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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엘리자벳] 뮤지컬 관람 후기 -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by designerluna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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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 뮤지컬 관람 후기,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

 

지난주 금요일 엘리자벳 뮤지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에서 관람했다. 엘리자벳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옥주연이 엘리자벳 주연이라는 얘기만 듣고 예매 후 친구와 관람했다. 캐스팅은 황후 엘리자벳 옥주연, 황제 프란츠 요제프 민영기, 죽음 노민우, 루이지 루케니 강태을, 대공비 소피 임은영, 황태자 루돌프 이석준이었다. 뮤지컬 처음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루이지 루케니가 매 장면마다 뮤지컬로 설명을 해준 덕분에 엘리자벳 뮤지컬을 보는 동안 이해가 더 빨리됐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3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엘리자벳 뮤지컬 관람을 마친 후 집에 오는 길에 황후 엘리자벳의 일생이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엘리자벳의 인생

황후 엘리자벳
황후 엘리자벳

시씨(Sissi)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엘리자벳(1837∼1898)은 오스트리아 제일의 미모를 뽐냈던 황후였고, 매우 당돌했지만 결국 역사 속, 비극적인 황후로 기록된다.

16살에 합스부르크 황후가 된 소녀

엘리자벳
황후 엘리자벳과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

 

엘리자벳, 별칭 시씨는 183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의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로, 시씨는 바이에른 왕국을 지배한 비텔스바흐 공작 가문의 자손이었다. 비텔스바흐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둘이나 배출한 명문 귀족이다. 엘리자벳은 뮌헨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슈 타른 베르크 호수 근처 포젠 호펜 성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황제가 첫눈에 반한 소녀

1853년 8월 18일, 온천 명소 바트이슐(Bad Ischl)에서 열다섯 살의 엘리자벳 공녀는 이모의 아들, 즉 외사촌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와 약혼한다. 일곱 살이나 많은 황제가 어린 소녀에게 청혼한 데는 사실 뜻밖의 사건이 있었다. 원래 황제와 약혼하기로 정해진 상대는 엘리자벳의 언니 헬레네였는데, 황제가 엘리자벳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약혼 후 행복한 여행

약혼식을 치른 후 황제와 비텔스바흐 일가는 잘츠부르크로 향하던 중, 돌소금으로 유명한 호반의 푸르른 고장 할슈타트에 잠시 머물렀다. 할슈타트는 두 사람이 약혼 후 처음으로 함께 거닐던 곳이기도 하며, 특히 길을 더듬어 마을에 도착하면 산록에 층층이 지어진 집들이며 좁게 이어진 골목과 계단 등이 절경을 이룬다. 둘은 고자 우호수에서 사냥을 즐기기도 했다. 특히 호수 주변 지리에 밝았기에 다흐슈타인의 산봉우리들을 거울처럼 맑게 비추는 아름다운 고자 우호 수로 엘리자벳을 데려가기도 했다. 사냥도 하고 사랑도 나누며 두 사람의 행복이 자연 속에서 함께 녹아든 달콤한 나날을 보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프란츠 요제프는 엘리자벳 일행을 배웅했다. 프란츠 요제프는 조금이라도 이별을 늦추고 싶었으나, 국정의 일 때문에 엘리자벳과의 휴가를 끝내고 비엔나의 쇤브룬 궁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할슈타트
할슈타트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
쇤브룬 궁전과 정원
쇤브룬 궁전과 정원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

 

결혼식, 시어머니와의 불화, 답답한 궁정생활

이듬해 1854년 4월 24일, 비엔나의 아우구스티너 교회(Augustinerkirche)에서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고 아름다운 황후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23세, 엘리자벳은 겨우 16세였다. 신혼이 된 부부는 결혼 후 쇤브룬 궁전에서 지냈다. 프란츠 요제프는 엘리자벳과 결혼을 계기로 프랑스 혁명군의 점령 당시 나폴레옹이 거주하다가 방치되었던 이 궁전을 개보수했고, 제2의 로코코 양식이라 할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된 쇤브룬 궁전에서 아름다운 황비를 맞이했다. 그러나 동화처럼 행복한 신혼생활은 엘리자벳에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이유는 시어머니와의 불화 때문이다. 뮌헨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젊은 엘리자벳에게 황실의 전통은 몸에 맞지 않은 옷과 같았고,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비엔나 궁정의 법도 때문에 그녀는 삶을 옥죄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엄한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와의 관계는 최악이었고, 16세였던 엘리자벳은 결혼식을 마치고 겨우 2주 후를 이렇게 기록했다. 꼼꼼하고 세심한 프란츠 요제프는 국정에 전념했고, 엘리자벳은 자유를 사랑하고 독서를 즐겼으며 신화에 매료되었다.

 

“작은 새는 새장 안으로 날아들었고 철창 문은 닫혔습니다.
나의 동경은 점점 커지기만 합니다. 자유, 당신은 나를 외면했어!”

- Kaiserin Sisi -

 

쇤부른궁전
쇤브룬궁전

 

우울,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

결혼기간 동안 엘리자벳은 네 명의 자녀를 낳았다. 1855년에 조피(두 살에 사망), 1856년에 기젤라, 1858년에 황태자 루돌프, 그리고 1868년에 가장 소중히 여긴 딸 마리 발레리가 태어났다. 황실의 관습에 따라 엘리자벳은 막내딸 마리 외에는 아이들을 직접 키울 수 없었다. 첫째 딸 조피가 겨우 두 살에 세상을 떠나자, 상처와 절망이 컸던 엘리자벳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으로서의 삶을 거부했고 점차 바깥출입을 꺼리기 시작했다. 대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궁 안에 욕조나 운동 기구 등을 설치했다.

 

궁전 밖으로

자유를 원한 엘리자벳은 종종 비엔나 근교의 락센부르크(Laxenburg)에서 지내고, 그곳에는 신선한 공기와 자연, 먼 곳까지 내달릴 수 있는 그녀의 애마도 있었다. 비엔나 서쪽 외곽, 광대한 라인츠 야생동물 보호구역 내에 자리한 헤르메스 빌라(Hermesvilla)는 1886년에 프란츠 요제프가 엘리자벳을 위해 세운 소 궁전이다. 하지만 이 궁전도 그녀를 비엔나에 머물게 하지는 못했다. 궁정 생활과 조피 대공비로부터 도망치듯 여행에 흠뻑 빠진 엘리자벳은 유럽 전역을 홀로 여행했다. 폐 질환을 앓았던 그녀에게 의사는 휴양지로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섬과 그리스의 코르푸 섬을 추천했다. 따뜻한 바닷가의 기온과 풍부한 자연은 그녀에게 새로운 에너지와 자신감을 주었다. 그곳에서 시씨는 집착적으로 미모 유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당대 최고의 미녀라 칭송받은 엘리자벳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하루 중 대부분을 외모 관리에 쏟아부었고, 전속 미용사는 그녀의 굵고 긴 머리칼을 손질해 아름다운 곱슬머리로 만들었다. 머리카락이 빠지면 엘리자벳이 크게 역정을 냈기 때문에 바로 감추어야 했다. 2주에 한 번씩 코냑과 계란 노른자로 머리를 감았고 머리가 무거워지면 리본으로 묶었다. 또 바닷소금과 올리브 오일을 넣어 입욕하는 게 그녀의 일과였다. 식사량은 적고 운동량은 많았는데 시녀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걸음걸이가 빨랐다. 잘록한 허리를 유지하는 일,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일은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코르셋의 끈을 조이는 데 몇 시간을 쓰는 건 일상이었다. 엘리자벳은 우울증과 거식증으로 고생했고, 공복 상태에서의 식사나 과도한 운동은 생활의 일부였다.

 

“내게는 사랑도 없고 와인도 없어.
사랑은 악을 만들고 와인은 침을 만들지.”

- Kaiserin Sisi -

꼬이기 시작한 운명

엘리자벳에게 결혼생활은 점점 버거운 짐이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는 엘리자벳을 매우 아꼈다고 전해지지만, 그에게는 정부가 여럿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엘리자벳이 의도한 일이기도 했다. 황제를 여배우 카타리나 슈라트와 교제하게 함으로써 그녀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채우고 더욱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게 되길 원했던 것이다. 가정에서는 시어머니로부터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자녀 양육도 직접 하게 되었다. 결국 넷째 딸 마리 발레리는 어릴 때부터 곁에 두고 직접 돌볼 수 있었다. 당시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황후이면서 헝가리의 여왕이기도 했다.


아들의 자살과 상복의 시대

아들의 자살로 엘리자벳은 상실의 시기를 맞았다. 1889년 1월 30일, 서른 살의 황태자 루돌프가 비엔나 근교 마이어링(Mayerling)의 별장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엘리자벳은 극심한 무력감과 비참함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엘리자벳의 막내딸 마리 발레리는 일기에 “엄마는 루돌프 오빠의 죽음을 따라가려 했고 밤낮으로 오빠를 그리워했다”라고 쓰고 있다. 이 사건 이후 엘리자벳은 오로지 검은 옷만 입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898년 암살당하기까지 그녀의 파괴적이고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지속되었고 우울을 가슴에 품은 채 끊임없이 해외를 여행했다.

엘리자벳 상복
아들 자살 후 엘리자벳은 검은 옷만 입었다.

 

아들 루돌프의 죽음

기혼자인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와 겨우 열일곱 살의 마리 베체라(알빈 폰 베체라 남작의 딸)의 동반자살 사건은 당시에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준 큰 사건이었다. 나중에 ‘덧없는 사랑 노래’로 사람들에게 전승되었고 비극의 무대가 된 별장은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명령으로 네오고딕 양식의 카르멜파 수도원으로 재건축되었다.

 

엘리자베트 와 루돌프 황태자
황후 엘리자벳과 황태자 루돌프

 

“인생이란 무의 끔찍한 방해입니다.”

- Kaiserin Sisi -

황후 암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엘리자벳이 생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습니다.

1898년 9월 10일, 엘리자벳은 경찰의 경호를 거부하고 호엔엠스 백작 부인이란 이름으로 제네바에 머물렀다. 레만 호반에 위치한 보 리바쥐 호텔에서 외출한 그때, 쇠줄처럼 날카로운 칼이 엘리자벳의 심장을 찔렀다. 엘리자벳은 상처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여 시녀와 함께 몽트뢰로 돌아가는 증기선에 올라탔는데, 그러나 겨우 두 시간 후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범인인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체니는 원래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를 암살할 계획이었으나 여의치 않아, 그를 대신할 만한 귀족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마침 그곳에 있던 엘리자벳을 충동적으로 암살한 것이다. 불운한 사건이었다.

 

엘리자벳 황후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

엘리자벳은 타투를 한 적이 있고, 51세 때 그리스에서 어깨에 닻 모양을 새겨 넣었는데, 프란츠 요제프 1세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엘리자벳은 문학과 시를 좋아했고 직접 시를 짓기도 했다. 시씨는 172cm 장신이었던 반면, 남편 인 프란츠 요제프는 168cm였다. 엘리자벳은 이따금 마약에 이용되던 코카인을 직접 투여했으나, 중독자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엘리자벳이 담배를 피웠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녀는 치열이 고르지 못해 의사에게 엄청난 돈을 썼다고 한다. 엘리자벳의 신발 사이즈는 26센티, 유럽 사이즈로 41, 한국 사이즈로 260이었다.

 


 

2022년 세계 초연 30주년을 맞이하는 뮤지컬 <엘리자벳>, 한국에서는 2012년 초연 이후 올해 10주년을 맞이한다. 고작 열어섯 나이에 합스부르크 왕가로 시집간 엘리자벳, 자유를 사랑한 엘리자벳, 4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대공비 소피(시어머니)로 부터 인해서 자녀를 돌볼 수 없게 되고, 시어머니와의 갈등, 엄격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황태자 루돌프와 정치적, 사상적으로 대립하게 된 황태자 루돌프는 결국 스스로 자살하게 된다. 아들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 한 이후 엘리자벳은 극심한 무력감과 괴로워하면서 수많은 고초를 겪은 엘리자벳은 자유를 그리며 방황하다가 서서히 토드(죽음)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범인인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체니로부터 살해되기까지. 엘리자벳 뮤지컬 관람하기 전에 사전 지식이 있었더라면 관람하는 동안 더 몰입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초연으로부터 어언 30년이 된 뮤지컬 엘리자벳은 명실상부 정기적으로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고 있다. 그리고 비엔나에서는 쇤브룬 궁전의 야외무대에서 콘서트 형식의 공연 <엘리자벳 콘서트 in 쇤브룬>이 매년 여름 공연된다고 한다. (2022년 6월 30일∼7월 2일)

 

 

출처: https://www.austria.info/kr/service-and-facts/about-austria/famous-austrian-people/kaiserin-elisabeth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금 전시하고 있는 합스부루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 마지막 부분에 황후 엘리자벳과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전시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읽어보는걸 추천드립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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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 뮤지컬 소개,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

뮤지컬 엘리자벳
뮤지컬 엘리자벳


“루케니, 도대체 왜? 황후 엘리자벳을 죽였습니까?” “내가 그녀를 암살한 건…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요!”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 그는 판사에게 엘리자벳 스스로가 죽음을 원했으며, 일생 동안 ‘죽음’을 사랑했다고 항변한다. 루케니는 증인을 세우기 위해 그 시대의 죽은 자들을 다시 깨우며 과거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어린 시절 활기 넘치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벳은 외줄 타기를 하다가 떨어지면서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인 ‘죽음(Der Tod)’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엘리자벳의 아름다움에 반한 ‘죽음’은 그녀를 살려두고, 마치 그림자처럼 엘리자벳의 주위를 맴돈다. 엘리자벳에게 첫눈에 반해 평생 그녀만을 사랑했던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그는 어머니 소피의 반대를 무릅쓰고 엘리자벳과 결혼한다. 하지만 엄격한 황실 생활과 엘리자벳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은 계속 갈등을 일으키고, 그럴수록 시어머니 소피는 엘리자벳을 더욱 옭아매려 한다. 그런 그녀를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죽음’은 자신이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며 끊임없이 엘리자벳을 유혹한다. 한편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엘리자벳에게 위기감을 느낀 소피는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 요제프가 바람을 피운 것처럼 계략을 꾸미고, 엘리자벳이 절망하는 와중에 ‘죽음’은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에게도 모습을 드러내 아버지 요제프와 맞서도록 만든다. 정치와 사상적인 문제로 아버지와 대립하던 황태자 루돌프는 어머니에게도 위로와 도움을 받지 못하자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엘리자벳 뮤지컬 관람 안내, 블루스퀘어 신한카드 홀

개요: 뮤지컬 엘리자벳 > 라이선스 뮤지컬 170분
기간: 2022.08.30. (화)~2022.11.13. (일)
시간: 화, 목 19:30, 수 14:30, 19:30, 금, 토, 공휴일 14:00, 19:00, 일 15:00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티켓: VIP석 150,000원, R석 130,000원, S석 100,000원, A석 70,000원
제작: (주)EMK뮤지컬컴퍼니
* 10/4(화), 10/11(화) 공연 없음
* 9/30(금) 19:00
* 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예매: :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08801

 

싸니까 믿으니까 인터파크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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